90년대 추상표현주의 화풍으로 국내외 주목을 받았던 화가 조부수(1944-2017)의 5주기를 맞아 그의 작품전이 서울 대학로 동숭갤러리에서 7월 14일부터 30일까지 열린다. 이번 전시에는 조부수 작가의 가장 화려한 시기로 평가받는 90년대의 '합주(Orchestration)' 시리즈 유화작품 25점이 소개된다.
조부수 작가는 고교 시절 국제 공모전에서 두각을 나타낸 이후 90년대에 화제를 뿌리며 독자적인 활동을 한 작가였다. 김환기 화백을 미국 시장에 부각시켰던 딘텐파스갤러리와 전속 계약을 맺고 초대전을 갖는가 하면, 오스트리아 비엔나 갤러리, 벨기에 브뤼셀의 드와트갤러리 등 유럽에서도 전시를 열며 유명세를 탔다.
딘텐파스갤러리와 조 작가가 연결된 계기는 작가가 1991년 링컨센터 내 포덤대학에서 연 개인전 덕분이었다. 전시를 둘러본 딘텐파스갤러리는 조작가에게 뜨거운 관심을 보였고, 작가를 직접 발탁해 1993년 전속 계약을 맺을 정도로 좋은 반응을 보였다.
생전의 조부수 작가는 “나 자신에 충실하는 것을 최선으로 여기고 있다. 나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져야만 서구적인 정서와 다른 독자적인 표현이 가능해진다. ‘한국성’에 대해 깊이 생각한다”고 말하곤 했다.
그가 80년~90년대 말 즐겨 그린 작품의 주제는 ‘합주(Orchestration)’. 노랑, 빨강, 녹색 등 밝고 화려하고 강렬한 색감에 추상적인 이미지들이 녹아들어 조화를 이룬다. 그는 미국 뉴욕과 프랑스 니스 등 미국과 유럽에서 작품성을 인정받으며 활발히 활동했다.
평론가 임두빈은 그의 작품을 “생동하는 화려한 색채 감각, 풍성한 생명, 이미지의 역동적 울림이 인상적이다”라고 평가했고, 김복기 평론가는 “1990년대 조부수 작품의 요체는 구축과 해체 혹은 생성과 소멸의 이중주로 요약할 수 있다. 말하자면 ‘묶는’ 행위와 ‘푸는’ 행위의 균형과 조화 혹은 그것의 순환 관계가 그의 작품을 지배하고 있다. 기하학적 구성이 화면의 일차적인 바탕이 되고, 그 위에 물감을 흘리고 뿌리고 튕기면서 새로운 기호적 형상을 만들어 가는 것이 그의 작품 제작의 기본 방식이다”고 평가했다.
조부수 작가는 국내 화단에 등장하면서 먼저 마치 사육제를 방불케 하는 자신의 분신이라 할 작품의 소각을 감행하며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당시 난지도에서 무려 1,500점을 불태우며 ‘자기부정’이냐 ‘창조적 파괴’냐의 논란을 야기시켰던 것. 당시 1980년대 화단을 지배한 상업주의와 패권주의에 자의든 타의든 저항의 뜻이 분명했다. 그 기행은 국내 유수화랑들과 해외 화랑들의 전시 초대로 이어졌다. 동숭갤러리에 따르면 조부수 작가의 분출하는 에너지와 샘솟는 상상력이 담긴 작품 수천 점이 국내외에 남아있다고 한다.
뉴욕 화단에 큰 영향력을 갖고 있던 미술평론가 겸 작가였던 게리트 헨리(Geritt Henry)는 조부수의 작품세계에 대해 “세계 미술계의 풍조인 포스트 모더니즘 따위(개념미술, 정치미술, 젠더미술 등)에 상관없는 ‘고전적 그림그리기’에 바탕을 두고 신표현주의(neo-Expressionism)의 새로운 세계에 용감하게 뛰어들었다”고 격찬하였다.
이렇게 활발하게 활동하던 조부수 작가는 어느 시점에 화단에서 종적을 감추었다.
그리고 10여 년이 지나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다. 그가 280여 명의 선조 신앙인들이 순교했던 죽음과 부활의 터인 공주 ‘황새바위순교성지’ 부활경당에 3500여 점의 벽화를 5년여간 도자기 타일로 구워서 한 점 한 점 붙여 완성한 후 모든 기력을 소진하고 별세하였다는 것이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동숭갤러리 이행로 관장은 “조부수 작가의 작품들은 대부분 세련된 수작들"이라면서 " 많은 미술평론가들이 평했듯이, 미술 세계에서의 자기표현을 위해 자기 파괴와 자기 생성을 거듭하면서 생의 에너지와 삶의 이유를 일궈낸 보기 드문 성과이다” 라고 밝혔다. 또 “조부수 작가의 안타까운 삶과 예술의 변증법이 빚은 과거와 현재의 퍼즐 맞추기에 우리 모두 나서야 할 때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